독일 아이들이 상점 앞에서 칭얼대는 이유

독일에서 쇼핑을 할 때마다 상점 앞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장면이 있다. 아이와 엄마가 다투는 모습이다. 한손엔 아이스크림이나 빵을 든 아이가 칭얼거리고 있고 나직하지만 강한 어조로 타이르는 엄마의 모습이다.

“왜 가게에 들어가면 안 되는 데? 나도 들어가고 싶어”

“지금은 안 돼, 들어가려면 문밖에서 빵을 모두 먹고 들어가야 해”

“조심하면 되잖아”

“그래도 안 돼, 실수로 방 가루를 떨어뜨릴 수도 있잖아.”

“잉-지금 들어가고 싶단 말이야”

“나인!(Nein, 안 돼)”

엄마의 대답은 언제나 단호하다.

대부분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저학년 연령의 아이들과 엄마다. 큰 아이들이 자주 눈에 띄지 않는 이유는 어느 정도 철이 든 아이들은 이미 엄마와 싸울 필요도 없이 알아서 처신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만 되어도 상점에 들어갈 때는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하는지 대부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으레 손에 음식을 들고 있을 때는 엄마가 들어가면 문밖에서 기다리거나 손에 든 음식을 모두 먹고 나서야 들어선다. 장난감 가게에 들어간 엄마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가게 앞에서 열심히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독일 엄마의 남을 배려하는 섬세한 가정교육에 감탄할 때가 많았다.

이런 예의는 분명 학교교육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학교교육과 전혀 무관한건 아닐지도 모른다. 공부는 못해도 이해받을 수 있지만 남에게 피해를 주는 어떤 행동도 용납되지 않는 학교생활, 공동체 생활의 규칙과 예의를 중시하는 학교교육을 통해 자란 엄마가 자신의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그런 가정교육을 하고 있는 것 같다.

Posted by 무터킨더

기도하는 의사

단상 2013.08.14 05:20

기도하는 의사



한 일주일 정도였을까? 대학병원에 입원했던 적이 있었다. 큰 병이든 작은 병이든 병원에 있다 보면 생각이 많아지니 마음을 비우기 위해 날마다 기도실에 내려가곤 했다. 대학병원은 덩그러니 큰 건물이었지만 기도실은 1층 가장자리에 아늑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묵상을 하기엔 기도실만큼 좋은 곳도 없어 자주 찾았다. 내가 근본적으로 불교인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다. 기도하는 자리가 바로 법당이요 절이니 그곳이 교회건 어디건 내게는 상관없다. 나를 돌아보고 깊은 내면으로 빠져들 수 있는 조용한 장소라면.


여느 교회 건물과는 달리 십자가 없는 기도실은 가톨릭과 개신교 신자들을 위한 공간인 것 같았다. 한쪽엔 성모 마리아가 그려진 액자가 걸려있고 그 아래 촛불을 켤 수 있는 단상이 마련되어 있다. 옆에는 무릎을 꿇을 수 있는 가톨릭 식 의자가 몇 개 놓여 있고 나머지 의자들은 평범한 것들이었다.


한 번 가면 한 시간 정도 묵상하는데 드나드는 사람들은 언제나 서너 명, 정규 예배가 있는 시간에도 한 두 명이 고작이었다. 기도실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모두 조용히 자기 방식대로 짧게 기도하고 돌아갔다.


그에 반해 건너편 이슬람교인들의 기도실은 항상 북적거렸다. 문이 폐쇄되어 자세히 들여다 볼 수는 없었지만 가끔 문이 열릴 때 슬쩍 들여다보면 방이 비좁을 정도로 사람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고 그들 방식의 기도를 하고 있었다.


내가 묵상하던 독일인들이 주로 드나들 던 기도실과는 정 반대였다. 독일에 이슬람인들이 많이 산다고는 하지만 독일 사람보다 많겠는가. 아이러니한 모습에 언제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에 잠기곤 했다. 무엇이 저토록 저들을 종교에 몰입하게 했단 말인가.


그날도 점심 식사 후 기도실에서 묵상 하고 있을 때였다. 하얀 가운을 걸친 나이 지긋해 보이는 의사가 들어왔다. 그는 가톨릭 신자인 듯 했다. 의자에 앉기 전에 바닥에 무릎을 꿇고 십자 성호를 긋고는 가톨릭식 의자에 앉아 기도와 묵상을 하고 돌아갔다.


정규 예배시간에도 산책 겸 기도실 앞을 지나다 유리문 안을 들여다보곤 했지만 의사나 간호사는 없었다. 환자나 보호자로 보이는 나이든 노인 서너 명이 전부였던 것 같다.


기도하는 의사. 나이 지긋해 보이는 외모를 모았을 때 그는 분명 높은 위치에 있는 의사임이 분명했다. 큰 수술을 앞두고 있었을까? 아니면 평범한 일상의 한 부분이었을까? 어떤 이유에서건 기도하는 하얀 가운속의 그가 성스러워 보였다. 왠지 그와 함께라면 삶과 죽음의 경계 속에서도 신뢰를 잃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별것 아닌 장면에 지나치게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 같지만, 자주 드나들던 기도실에서 처음 보는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그토록 많은 의사와 간호사가 진을 치고 있는 대학병원에서 기도하는 의사를 처음 보다니.


종교란 무엇인가. 험난하고 거친 세상을 현명하게 살기 위해서는 더 없이 좋은 삶의 묘약이다. 너무 깊이 빠져서 세상의 이치를 자신이 가진 종교중심으로만 생각하고 판단하고 남의 종교를 부정하는 잘못된 종교인만 안 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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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한 여자에게 자신감이란

 

 

아주 친하지는 않지만 좀 알고 지내는 중년의 여인이 있다. 언제 보아도 그녀는 씩씩했고 자신 있어 보여서 좋았다. 처음엔 어디서 나오는 자신감인지 몰랐다.

 

특별히 뛰어난 외모도 기품 있는 언행의 소유자도 아닌 것 같은데 언제나 당당한 그녀의 행보가 돋보인다고 생각했다.

 

겉모습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중늙은이를 상대로 외모를 이야기 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외모는 그 사람의 인성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기에 하는 말이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그저 좋았을 뿐 그녀에 대한 관심은 없었다. 무엇을 했던 사람인지 가족은 어떤지에 대해서도 물어본 적도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한 카페에서 그녀와 그녀의 남편을 만날 일이 있었다. 언제나처럼 그녀는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어투로 대화를 주도해 갔다. 대화 도중 남편의 직업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고, 그때 처음으로 그녀의 남편이 잘나가는 전문직업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특별히 새로운 사실도 아니었고 놀랄 일도 아니었다. 그 정도 수준의 직업인은 도처에 널려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우스웠던 것은 그녀의 반응이다. 그녀는 내가 자신의 남편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는 사실에 많이 놀랍다는 표정을 지으며 ‘세상이 다 아는데 너만 모르고 있었냐?’는 듯한 뉘앙스로 반응했다.

 

갑자기 큰 실수를 하기라도 한듯 미안한 생각까지 들 정도로 호들갑을 떨었다. 그녀의 호들갑 속에서 ‘그렇다면 당신은 지금까지 나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고 있었겠군!’이라는 무언의 아쉬움이 슬쩍슬쩍 비춰졌다.

 

무엇이라 표현해야 할까. 묘한 느낌이었다. 지금까지 보아온 그녀의 자신감의 근원이 남편의 직업이었다니.

 

그러고 나서 생각해 보니 정말 그녀는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 촌부였다. 외모도 그저 그렇고, 언행도 수준 있는 가정에서 잘 배우고 자란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정말 그녀가 가진 것이라고는 자랑스러운 직업을 가진 남편밖에 없어 보였다.

 

그녀와 헤어져 돌아오는 길에 나도 모르게 씁쓸하게 읊조렸다.

'결혼한 여자에게 자신감이란 이런 것이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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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자신감

영면

단상 2013.03.04 06:54

 

영면

 

 

먼저 가기에는 아쉬웠던 사람.

그의 영면을 기리는 젖은 눈망울들 사이에

나도 있었다.

 

이승은 순서대로 왔지만 가는 순서는 없는 것,

언젠가는 우리 모두가 가야할 그 곳에

그가 조금 먼저 갔을 뿐이다.

 

아주 간 것은 아니다.

그는 분명 새 생명으로 다시 나투어 돌아오리니

슬퍼하지 말자.

 

좋은 세상에서 다시 만나길 기도하자

슬픔은 살아남은 자들의 것,

이승의 무거운 짐들을 훌훌 벗어던진 그를

오히려 축복하자.

 

합장-

Posted by 무터킨더
TAG 영면

 

겨울을 견딜 수 있는 에너지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게 겨울이 지나고 있다. 이번 겨울 독일은 공식적으로 일조량이 기록되기 시작한 1950 이후 겨울 일조량이 가장 낮다고 한다.

 

한국의 겨울을 생각하면 지나치게 건조해서 밤잠을 설쳤던 날이 많았던 것 같은데 독일은 정 반대다. 눈이 아니면 비다. 날씨가 좀 따뜻하다 싶으면 추척추적 비가 내리고 약간이라도 칼칼해지면 눈발이 날린다.

 

사람의 기분을 한 없이 다운시키는 이 나라의 겨울이 정말 싫었다. 일 년 중 자살률 가장 높은 계절도 겨울이다.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버틸 수 있는 에너지를 충분히 제공받지 못하는 기후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올해 겨울은 바쁘게 쫓아다니다가 어느 순간 돌아보니 끝자락에 와 있는 것 같다. 비가 왔는지 눈이 왔는지 해가 나왔는지 들어갔는지도 몰랐을 정도로 동분서주 했다. 날씨가 추운지 더운지 우울한지 느껴볼 여가도 없이.

 

내가 씩씩해지니 내 곁을 스쳐지나가는 모든 이들이 건강해 보인다. 예전에는 코트 깃 깊숙이 얼굴을 묻고 지나치던 이웃이 밝게 웃는다. 그리고 내게 말을 걸어오기도 한다. 여름이 아니라 겨울인데도 말이다.

 

그리고 보니 삶의 에너지는 환경이 주는 선물은 아니다. 자기 내면에서 스스로 끄집어내어야만 하는 숙명적인 과제다.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만이 해결할 수 있는 과업.

 

에궁.... 근데 이 겨울이 다 가기 전에 다음 책 탈고해야 하는 뎅.....

아자....홧팅!!!^^

Posted by 무터킨더
TAG 겨울

 

품격 있는 사람과

 

품격 있어 보이고 싶은 사람

 

 

세상에는 참으로 많은 종류의 사람이 살고 있다. 진실한 사람, 허영심만 가득한 사람, 사기성 농후한 사람, 허풍쟁이, 천박한 사람, 품격 있는 사람, 품격 있고 싶어 안달하는 사람.

 

그 중에서도 오늘은 품격 있고 싶어 안달하며 사는 사람 이야기를 하려한다. 품격 있는 사람과 품격 있어 보이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이 다르다.

 

품격이란 그 사람이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내력이 언어와 표정과 걸음걸이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타인에게는 아우라로 비춰지는 것이다.

 

그에 반해 행동이나 언어나 표정, 심지어 말투까지 천박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이 있지도 않은 품격을 욕심내다보면 고장 난 수레바퀴처럼 떨걱거리게 된다. 자신에게는 있지도 않은 기품을 세우려다보니 남을 깎아 내리는데 열중하게 되고 겉치레에만 연연할 수밖에 없다.

 

그리 길지 않은 세월이지만 이승에서 만난 지인 중에는 잠시만 시간을 내어 친숙해지면 그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든 기품이 보이는 사람이 있다. 청소부든, 식당 종업원이든, 여공이든.

 

그러나 비싼 명품을 걸치고 근엄한 표정에 주변을 화려하게 갖추고 다닐지라도 밑천이 훤히 드러나 보이는 사람도 있다. 한마디로 품격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면서 품격 있는 사람이 되려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묘한 것은 나뿐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호수위에서 우아하게 노니는 백조를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물속에서 발버둥 치며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안타까워한다. 본인만 모를 뿐 누구나 알고 있는 것 같다. 그가 진정 품격 있는 사람인지 말이다.

 

품격이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공예품도,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생산품도 아니다. 또 없으면서 있는 체 할 수도 없다.

 

남에게 진정 품격 있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면, 가장 좋은 방법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다. 과장도 축소도 없이 그냥 그대로 자연스럽게. 그 방법이 그나마 자신이 지니고 있는 서푼짜리 품격이라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일 것 같다.

Posted by 무터킨더
TAG 품격

 

소원 빌면서 던진 동전,

 

누가 가져갈까?

 

 

오늘은 멋진 동상이 있는, 분수대는 아니고 이런 곳을 한국말로 뭐라고 부르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가장자리에서는 물이 나오고 가운데로는 계속 흘러 들어가는 웅덩이 비슷한 인공 샘터 같은 곳입니다. 한국어로 정확한 이름을 알고 계신 분은 좀 알려주세요.^^

 

여하튼 그런 곳이었습니다. 물가에 서 있는 동상의 표정과 제스추어가 워낙 인상적이어서 예전부터 카메라에 담고 싶었던 곳이었지요 여름에는 많은 사람들이 동상 주변에 모여 동전을 던지곤 합니다.

 

 

독일인들도 우리처럼 소원을 비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꽤 많은 동전이 쌓일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날 보면 언제나 말끔하게 사라집니다. ‘누가 동전을 가져갈까?’ 항상 궁금했지요. 가끔은 나도 ‘저거 주우면 꾀 되겠는데.’ 생각하면 군침이 돌기도 합니다.^^

 

이날도 이미 바닥은 거의 누군가 말끔히 청소한 상태였지만 드문드문 동전이 보이기는 하더라고요. 겨울이라 주변에 사람도 많지 않고 없는 솜씨지만 사진 찍기 좋을 것 같아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데 누군가 쏜살같이 자전거를 타고 와서는 내 앞을 턱 가로막았습니다.

 

 

행색을 보아하니 노숙자이거나 걸인처럼 보이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녀는 카메라를 들고 있는 나를 완전히 무시하고 차가운 물속에 손을 성큼 담그는 게 아니겠어요. 순간 주춤했습니다. “내가 계속 사진을 찍어야하나 말아야 하나.”

 

그런데 내 앞에 있는 그 여인은 전혀 나를 의식하지 않고 동전 줍기에 열중하고 있었습니다. 아, 그녀가 바로 그동안 궁금해 하던 동전을 청소해 가는 사람 중의 하나였던 것입니다. 너무나 익숙하게 물속을 더듬는 것이 이미 프로 수준이었지요.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사진이지만, 이건 내 잘못이 아니라 카메라 앞에 불쑥 나타나서 갖가지 포즈를 잡아준 이양반 실수입니다. 기다리다 못해 ‘사진을 찍어도 상관없냐?’고 물었더니 ‘마음대로 하라’며 씩~ 웃더라고요. 할 수 없이 카메라에 담게 되었습니다.^^

Posted by 무터킨더

 

독일에서 최고는

 

독일인이 만든 수제품?

 

 

“이거 얼마예요?”

“ㅇㅇ 유로입니다.”

“어휴 무지 비싸네요.”

“이 물건은 비싼 만큼 가치가 있습니다. 독일 사람이 만든 수제품이거든요.”

 

독일에서 물건을 사러 다니다 보면 가게 주인과 자주 하게 되는 대화다.

 

독일인은 오만한 건지, 자신감인지 자신들의 손으로 만든 물건을 세계에서 가장 좋은 제품으로 생각한다. 상품의 질을 보장한다는 말이 바로 ‘독일 사람이 만든 수제품’이다. 이것보다 더 좋은 물건이 한 가지 더 있기는 하다. ‘독일 마이스터가 만든 수제품.’^^

 

식탁과 의자를 구경하러 갔는데 딱 보기에도 비싸 보이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값이 많이 나가서 비싸다고 했더니 바로 ‘독일 사람이 만든 수제품’이란다. 새물건도 아니고 헌 가구였지만 새것보다 훨씬 비쌌다.

 

“의자가 아주 고급스럽네요. 난 이렇게 비싼 가구를 원하는 건 아니었는데 부담이 좀 많이 됩니다.”라고 했더니 그는 한마디 더 했다. “독일 수제품은 고급스러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아주 튼튼하고 안정감 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특히 마이스터 손으로 만든 물건은 세계에서 으뜸이죠.”

 

내가 외국인이라 모를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지 독일 수제품에 대한 설명까지 친절하게 해주었다. 물건을 보여준 사람은 스스로도 마이스터 요리사여서인지 마이스터에 대한 믿음이 대단해 보였다. 나이 60가까이 된 그는 으리으리한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으면서도 지금까지 직접 요리를 한다.  

 

그러고 보니 독일 물건들은 언제 보아도 세련된 느낌은 없었다. 튼튼해 보이기는 하지만 디자인은 단순하고 끝마무리가 투박하다. 이 사람들의 성격과도 닮아 있는 듯, 답답하도록 느릿느릿 일하면서 기교를 모르고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는.

 

그러나 나 같은 사람은 튼튼하다는 점 때문에 독일산을 잡기는 하지만 별로 매력을 느끼지는 못한다. 같은 제품이라도 한국이나 일본산이 시선을 끄는 것은 사실이니까. 그러나 독일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자기들이 만든 물건을 세계에서 최고라고 생각한다.

 

이런 모습을 보면 대단하면서도 강한 믿음이 생겨난다. 그런 저력이 오늘날까지 독일을 경제 강국에 머물 수 있게 했으리라. 그러나 이런 우직한 자신감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건 내가 외국인이기 때문일까?

 

순전히 나 혼자만의 생각이지만 앞으로 미래 세계에서 독일의 적응능력도 이들의 수제품 만큼이나 안전할지. 스마트폰이다, 컴퓨터다 자고 일어나면 바뀌는 변화무쌍한 시대에 ‘독일인이 만든 수제품’은 언제까지 독일의 자존심을 지켜줄지 궁금하다.

 

Posted by 무터킨더

 

독일, 백화점 일요일 영업이

 

인권침해라고?

 

 

백화점에 취직을 한 대학 선배가 있었다. 백화점에서 일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졸업 후 계속 소식을 모르고 지내다가 어느 날 일 때문에 우연히 마주 앉을 기회가 있었는데 당시 그는 많이 지쳐보였다.

 

졸업을 할 때 좋은 회사에 취업을 했다며 해맑게 웃던 20대 중반의 의욕적인 청년이 불과 몇 년 사이에 인생 다 살은 듯한 노인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의욕적으로 일 하기 보다는 과중 한 업무에 치이다 보니 하루하루가 전쟁이라고 했다.

 

그런데 더 슬픈 사연은 직장 때문에 모든 인간관계가 끝나버렸다는 이야기였다. 백화점이란 남들이 신나게 노는 주말에는 밤늦은 시간까지 일을 해야 하고 다른 사람이 모두 일할 때 쉬는 직장이다 보니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주말에 일할 때는 일하느라 정신없이 보낸다고 하지만 쉬는 월요일이 더 황당하다고 했다. 아이들은 등교했고 맞벌이 부부다보니 부인도 근무하는 날이니 하루 종일 멀뚱하게 앉아 TV만 보고 있단다.

 

친구라도 만나고 싶지만 월요일에 노는 멀쩡한 친구가 없어 그것도 불가능하다. 동창회고 동호회고 모두 주말에 있으니 백화점 취업과 함께 남의 이야기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밤 12시가 넘도록 휘황찬란한 네온사인 사이를 누비고 다닐 수도 있고, 주말이고 공휴일이고 상관없이 언제 어디서라도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살 수 있고, 먹고 싶으면 먹을 수 있다는 것, 경제적으로 약간의 여유만 좀 있다면 참 편한 세상이다.

 

그런데 내게 그런 편리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하다. ‘희생이라고? 그런 직장도 들어가려면 하늘에 별 따기야, 어떤 사람은 없어서 못하는 데, 자기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희생이라는 건 말도 안 돼!’라고 한다면 할 말 없지만, 여하튼 그것을 위해 누군가는 비정상적인 생활에 익숙해져야 하는 건 사실이다.

 

무엇이 옳은지는 나도 정확히 모르겠다. 실업자 천지인 세상에서 인권운운하며 일자리의 호불호를 따질 여유가 있는지.

 

지금은 독일도 조금씩 한국이나 미국의 자유경쟁을 따라가는 듯 슈퍼마켓이나 백화점이 갈수록 늦게까지 문을 연다. 14년 전 이 나라에 처음 왔을 때, 슈퍼마켓 개점 시간을 제대로 몰라 주말에 먹을 것이 없어 황당했던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지금은 평일 8시까지 문을 여는 마켓이 당시에 5시까지였고 토요일엔 2시에 닫았다. 한국에서 밤늦게까지 장보러 다니던 습관 때문에 정신없이 이리 저리 쫓아다니다 보면 아차 하는 순간에 시간이 지나 마켓 문 앞까지 갔다가 돌아서기 일쑤였다.

 

그러던 독일 시장이 조금씩 개점시간을 늦추더니 지금은 8시가 되었고 조금 큰 마켓은 10시까지도 연다. 그러나 일요일은 여전히 모든 상가가 문을 닫는다. 그런데 일요일 영업도 꾸준히 논쟁거리다. 이 법도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

 

한 편에서는 일요일에 영업을 하면, 남들이 쉬는 공휴일에 일해야 하는 사람들의 인권이 문제라며 거부하고, 다른 편은 실업자가 지천인데 일하는 자의 인권이라니, 사치스러운 고민이라고 비난한다.

 

당신이라면 어느 편에 서겠는가?

 

Posted by 무터킨더

 

독일선 국가경제와

 

내 주머니 돈이 직결된다

 

 

이미 작년에 뉴스를 통해 듣기는 했지만 까맣게 잊어버리고 살다가 오늘 치과에 가서야 세 달에 한 번 분기별로 내던 병원 진료비 10유로(14000원)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체감했다.

 

독일 의료보험료, 정말 만만치 않은 금액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큰돈 낼 필요는 없지만, 고소득자는 물론 중산층 정도만 돼도 부담이 상당히 크다. 그러나 병원 진료비는 완전 무료, 아무리 큰 수술을 받아도 돈 걱정을 할 일은 없다.

 

그런데 오늘은 복지 이야기가 아니다. 독일에 살면서 재미있었던 경험 중 하나는 생필품 가격이었다. 남편이 월급쟁이다 보니 경제 흐름에 그리 민감하지는 않다. 그러나 알고 싶지 않아도 이 나라에서는 주부라면 누구라도 알 수밖에 없다.

 

‘현재 독일 경제가 좋아지고 있다’는 뉴스를 듣고 얼마 지나지 않으면 바로 슈퍼마켓에 가격 인하 팻말이 죽~ 걸리기 시작한다. 생필품 가격이 일시에 내려가는 것이다. 여기선 경제가 좋아지면 아무리 시중 경기와 관련 없는 말단 공무원일지라도 당장 내주머니 사정이 함께 좋아진다.

 

이 나라도 장사하는 사람들은 비슷한지라 오를 때는 언제 올랐는지 모르게 슬쩍 올리지만 내릴 때는 빨간 글씨로 고객 눈에 분명하게 들어올 수 있도록 요란을 떨기 때문에 확실히 알 수 있다. 그런데 물가의 오르고 내림이 우후죽순처럼 회사마다 다른 것이 아니라 일정한 흐름이 있다.

 

경제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라 처음엔 그 흐름을 감지하지 못했었다. 한참을 지나서 보니 독일 물가는 이 나라의 경제 상황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었다. 그러니 경제가 좋아지면 바로 전 국민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것이다. 삭제된 병원비 10유로도 마찬가지다. 최근의 독일 경제가 좋아지면서 반영된 희소식 중 하나다.

 

2008년 미국의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을 시작으로 세계를 휩쓴 금융위기 때문에 독일도 내수시장 침체가 지속되고 있을 때였다.

 

내수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정부에서는 다양한 대책을 내놓았었다. 9년 이상 된 자동차를 폐차시키고 새 차를 살 경우 정부에서 2500유로(420만 원 정도)를 지원했고, 각 가정의 집수리 비용을 지원하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2009년 여름에 있었던 일은 잊을 수가 없다. 어느 날 통장을 조회해 보니 200유로의 눈먼 돈이 떡하니 들어와 있지 않겠는가. 보낸 사람을 보니 매월 어린이양육비를 보내는 관공서였다. ‘실수 했구먼. 에~이, 좋다 말았네!’ 라며 빨리 다시 빼가라고 전화라도 넣으려고 했는데 그 옆을 보니 ‘보너스’라고 찍혀 있었다. 어린이가 있는 집마다 한 아이 당 100유로씩 모두 보내 준 것이다.

 

우리는 2009년 당시 한 아이 당 164유로씩(현재는 186유로로 인상), 두 명이기 때문에 328유로를 매월 받고 있었다. 그런데 그 달에는 정부로부터 양육비를 무려 528유로를 받은 것이다. 기분 좋아서 그날 당장 나가서 외식 한 번 거 하게 했었다. 아이들 잘 먹이라고 보내준 돈이니 취지에 맞게 써야 한다며.^^

 

그렇게 신바람 나게 외식을 하고 나니 그 다음 달부터는 또 세금이 감면되었다고 봉급통장에 월급이 더 들어와 있었다. 우리야 월급쟁이라서 금융위기가 뭔지도 모르고 살고 있는데 물가는 내리고 돈은 자꾸 더 들어오고 한 동안 이게 뭔가 싶어 신기했었다.

 

한국에서 결혼 후 큰 아이를 낳고 살림을 하다가 독일에 왔다. 그런데 한국에 살 때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좀 이상하다. 국가경제와 물가의 연관성을 이처럼 민감하게 감지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경제는 좋아진다는데 장바구니는 항상 그대로였고, 나빠진다는 소식이 들려오기가 무섭게 오르기는 또 분명히 올랐던 것 같다.^^ 도대체 독일과 한국은 무엇때문에 다른지 경제 전문가가 있다면 정확하게 좀 듣고싶다.

Posted by 무터킨더

 

유명 월간여성지 기자의

 

불쾌한 취재요청

 

 

얼마 전 유명 여성월간지 여기자로부터 취재요청에 관한 질문을 받았다.

 

그녀는 편집회의도 마치지 않은 듯, 오는 1월호는 세계의 교육트렌드를 주제로 하는데, 최근 독일 내에서 교육과 관련된 핫 이슈는 무엇인지, 학부모와 학생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교육 정책 혹은 프로그램 등은 무엇인지 심층 취재하겠다는 메일을 보내왔다.

 

정확한 의도가 무엇인지 알 수 없어, 내게 원하는 것이 대체 무엇이냐고 답을 보냈더니,

 

두 번째 메일에서도 교육 커리큘럼과 관련된 이야기와 전반적인 학교의 분위기를 두 파트로 나눠서 각각의 파트에는 하나의 주제를 잡아서 가려고 하니, 이와 관련하여 최근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 독일의 현지 교육 이슈에 대해 전달해 주면 선택과 집중을 통해 주제를 정해 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계속 막연한 질문만 했다.

 

마치 내게 세부 기획안을 달라는 듯한 태도였다.

 

자, 이런 질문이 받았을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교육을 위해 헌신하는 무보수 봉사단체도 아니고, 상업용 잡지의 읽을거리를 위해 아무 조건 없이 시간을 내어 자료조사해서 협조를 해야 할까?

 

내게도 시간은 소중하다. 적어도 원고를 청탁하든 취재를 요구하든 가장 먼저 필자에게 청탁해야할 주제가 무엇인지, 내용은 무엇인지, 경비는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기본적인 전제를 주고 시작하는 것이 예의 아닐까?

 

원고료가 얼마인데 어떤 내용을 어떤 방식으로 취재해서 이렇게 써 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을 경우 취재경비가 들어가면 나는 항상 거절한다. 이 잡지사 말고도 그동안 이와 비슷한 청탁은 많았고 대부분 거절했었다. 그런데 이 기자는 경비나 원고의 주제, 구체적인 취재방향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이 계속 내게 정보를 먼저 달라는 것이다.

 

최근의 독일 교육의 이슈라, 이 질문을 정확히 알아보기 위해서는 인터넷을 뒤지든 도서관에 가든 시간을 내어 알아봐야 한다. 최근의 한국교육의 이슈가 무엇인지 물었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아무리 전문가라도 단어만 입력하면 튀어나올 정도로 머릿속에 모든 정보를 담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원고를 청탁 하겠다는 것인지 말겠다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언급도 없이 무작정 최근의 이슈를 말해달라는 것이다. 결국 '관심 있는 학교폭력에 대해 이야기 하며 편집회의 먼저 마치고 주제가 결정되면 청탁이든 뭐든 하라'고 했더니 바로 청탁을 했다.

 

내 블로그에서 이것저것 읽고 나니, 그중에서 예나플랜 학교의 콘셉트가 좋았다며 취재 해 달란다. 학교에 대한 취재는 물론 교장인터뷰와 학생인터뷰, 만일 그 학교에 한국 학생이 다닌다면 한국 학생 인터뷰까지 하면 좋겠다고 했다. 물론 여전히 취재 경비나 원고료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예나는 아헨에서 500km다. 취재 섭외도 여러 날이 걸리겠지만 하루에 다녀올 거리도 아니다. 일개 월간여성지가 교통비, 숙박비, 원고료까지 포함하면 500유로는 족히 나올 텐데 사실상 불가능한 요청이라 생각하고 정중히 거절했다.

 

그랬더니 이 기자 황당한 답을 보내왔다. 기분 나쁘다는 듯, 그렇게 시간이 없으면 미리 말할 것이지 메일을 주고받는 사이에 마감이 임박해 버렸다는 것이다. 허참, 어이가 없어서, 주제도 잡지 못하고 필자에게 기획안 내놓으라고 조르다가 덤터기를 씌우는 형국이라니... 황당하고 불쾌했다.

 

‘나는 시간 많으니 취재 경비는 댈 수 있겠느냐, 마치 내가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이야기하는 데 아주 불쾌하다’라고 했더니 역시 대답 없이 무시해 버린다. 그런데 나는 이미 끝을 알고 있었다. 이런 유의 기자들을 적지 않게 경험해봤기 때문이다. 급할땐 뻔질나게 메일을 보내 정신없게 해놓고는 필요 없으면  인사는커녕 미안하다, 안되겠다, 되겠다 등 가타부타 끝마무리가 없다.

 

그런데 분명히 알아 둘 것은 당신 같은 기자들을 겪다보니 공연히 시간 낭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터득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청탁 어쩌고 해도 시간투자 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기자, 데스크에는 분명 필자가 취재하겠다고 약속하고 갑자기 거절한 것처럼 보고했을 것이다. 직접 접촉한 내게도 이처럼 황당한 어거지를 쓰는 것을 보면 안봐도 그림이다.

 

귀중한 시간을 할애해서 조사하고 정보 주고 나면 전혀 현실성 없는 취재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았다. 때문에 나는 구체적인 청탁서를 받고 가부를 정한 후 자료조사든, 취재든 칼럼이든 쓰기 시작한다. 이것도 수많은 경험을 통해 생긴 습관이다.

 

이 여성지는 이미 몇 해 전에 몇 번 글을 보냈던 곳이다. 뻔~한 원고료에 지나치게 무리한 취재를 요구해서 이미 사양하고 끝났었는데 급했는지, 아니면 대안이 없었는지 다시 연락이 온 것이다. 내게 원고 청탁을 했던 기자는 분명 이 글을 읽을 것이다. 블로그에 상세히 쓴다고 선전포고를 해두었으니 열심히 보겠지. 앞으로 다른 필자에게는 제발 일의 순서를 정확히 알고 시작하길 바란다.

   

시간이 촉박했다면 밤을 새워서라도 대주제에 관해서는 공부를 한 다음 취재든 청탁이든 시작하는 것이 순서다. 자신이 할 일을 남에게 떠넘기고 받아주지 않으니 원망? 어디서 배운 못된 기자질 인지 한심하다고밖에 달리 할 말이 없다.

 

가끔 블로거들에게 잡지사에서 연락이 와서 기고했는데 원고료는커녕 발행된 잡지도 안 보내준다는 하소연을 들었다. 글 쓰는 일을 본업으로 삼지 않는 사람은 누구나 활자의 매력에 대한 허상을 가지고 있다. 그런 사람들의 약점을 이용해 블로거들에게 공짜 원고를 가져가고 대가는물론 연락도 없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 같다.

 

나는 본래 직업이 글쟁이어서인지 신문이나 잡지에 내 글이 실린다는 자체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대학 졸업하고 한 10년 썼으니 이력이 날 정도다. 신문이면 하루, 월간지면 한 달만 지나면 쓰레기 더미 속에 던져질 휴지 조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뻔히 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의를 다해 쓰게 되는 것은 결국은 원고료라는 보상이 있기 때문일수도 있다. 순수하게 글의 가치와 비중을 따지자면 내겐 매체보다 내 책과 내 블로그 포스트가 더 소중하다.

 

무터킨더는 너무 속물이라고 흉보려나?^^ 바로 요거다. 출판사든 잡지사든 원고료 떼먹는 인간들은 모두 글 쓰는 사람들의 알량한 자존심을 이용한다. 대 놓고 돈돈하면 명예에 무슨 큰 흠이 나기라도 하는 듯, 돈 이야기는 못 꺼내는 글쟁이들.

 

그런 약점을 이용해서 원고료는 대충 말로 때우고, 그럴듯하게 지면만 채우면 된다고 생각하는 잡지사들의 횡포는 블로거들 사이에서 잊을만하면 터져 나오는 불만이기도 하다. 엥? 이야기가 또 블로그로 흘러가버렸네... 에궁~~ 오늘도 횡설수설....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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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무터킨더

 

트위터에서 알바들

 

노는 거 보기 한심해

 

 

내년 봄 즈음에 나올 것 같은데, 독일교육 후속편 원고 정리 하느라 정신없습니다.

 

자연이라는 것, 자연스럽다는 것, 자연의 순리는 외부의 손길이 닿지 않으면 저절로 치유되고 다듬어지며 흘러갑니다. 자연의 형벌은 순리를 거역했을 때 내려지는 것이지요.

 

최근 블로그를 보면 그런 생각이 듭니다. 거품이 빠지고 정말 할 사람들이 하고 있는 느낌이랄까요? 누군가 관여하지 않아도 저절로 정리가 되고 있는 것 같은.....

 

블로그가 무슨 대단한 이익이나 명성을 가져다 줄 것처럼 한껏 부풀려져 있을 때를 생각해 보면 너나 할 것 없이 달려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뚜껑을 열고 직접 도전해 보니 상황이 달랐겠지요.

 

투자하는 시간에 비해 돈도 별로 안 되고 생각보다 지명도도 없으니 제풀에 지쳐 그만두게 됩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이미 블로그로 무엇인가를 할 만한 재목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주변에 보면 블로그로 목표하는 바를 이루어 낸 사람들은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공통점은 한 가지만 죽도록 연구하고 파고들었던 것 같습니다. 블로그를 운영해서 직접 이익을 내고자 했던 사람은 없었지요.

 

블로그는 여전히 평범한 한 개인에게 대단한 것을 가져다 줄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위해서는 큰 인내와 노력과 유혹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는 정확한 판단력이 필요합니다.

 

지저분한 알바들은 악플은 달수 있어도 블로그 운영은 못합니다. 가끔 냄새나는 블로그가 있기는 하지만 읽는 이가 없으니 허당이지요. 호흡이 긴 글을 술술 쓸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이 있는 사람이 무엇 하러 한심한 짓거리를 하고 다니겠요.

 

요즘은 트위터에 진을 치고 있는 알바들, 예전엔 블로그에 악플다는 일이 주업이었지요. 정말 한심하고 성가신 말종이었는 데 최근엔 트위터로 둥지를 옮겨 서로 RT연발 해서 띄워주며 자기들끼리 상부상조하며 잘놀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니 더욱 분주합니다. 지난해 여당 대표가 공언한 1만 인테넷 전사 양성에 성공한 것일까요?

 

팔로워 150만이 넘는 이외수 선생보다 팔로워가 15000밖에 안되는 듣보잡 계정이 더 많이 리트윗 되고 있으니 안봐도 그림이지요.^^ 

 

여하튼 세상은 참 재미있고도 무섭습니다. 새로운 소통공간이 생기면 가장 정보에 민감한 진보들이 한바탕 먼저 놀고 갑니다. 보수 알바들은 항상 뒷북이지요. 자발적인 이동이 아니니 따라다니기도 아마 벅찰 겁니다. 한심하지만 한편으론 물리력도 무섭지만 돈으로 여론을 형성한다는 것이 무섭기도 합니다.  

 

알바든 자발적이든 당장 코앞에 놓인 목적을 향해 정신없이 가는 사람들은 우선 서푼어치도 안 되는 이익에 양심을 팔아야 합니다. 그러다보면 당연히 얼마 안가서 지치고 주저앉게 되는 것입니다. 아니면 계속 흙탕물에서 첨벙거리며 놀든지.

 

에궁..... 트위터에서 알바들 노는 꼴 보기 하도 한심해서 오늘밤엔 횡설수설하고 있네용...ㅎㅎㅎ

Posted by 무터킨더

 

식사 끝낸 빈 그릇에서

 

그의 맨얼굴이 보인다

 

 

뷔페식당에 가면 특히 그 사람의 의식수준을 적나라하게 알 수 있다. 몇 년 전 우연한 기회에 며칠 동안 독일인들과 숙식을 함께하며 보낼 일이 있었다. 독일엔 외국인이 많아서 순수하게 독일인들이라고 할 수는 없고 몇 나라 사람들이 그룹을 이루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 약속이라도 한 듯 뷔페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일어난 자리는 천지차이였다. 어떤 나라라고 공개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그 나라 사람들이 모여서 식사한 자리는 완전 밥 먹다가 폭격 맞은 것처럼 난장판이었고, 가지고 온 음식은 절반도 먹지 못하고 수북이 쌓아 놓았다.

 

식당을 나가던 독일인들이 하나같이 인상을 찌푸리며 한마디씩 하고 갔다. 식사 습관에도 개인 차이가 분명 있을 텐데, 어쩌면 그리도 나라에 따라 표가 나는지. 식습관에서도 국민성이 적나라하게 보인다는 것이 참 신기했다.

 

나는 내 몸을 치장하는 데도 게으르고, 집안 쓸고 닦는 일도 귀찮아 하지만 쓰레기를 철저히 분리수거하는 것은 아주 열심이다. 또 맛있는 음식 찾아 먹는데 열을 올리지는 않지만, 먹고 난 그릇은 깨끗해야 한다는 생각을 늘 하고 산다.

 

그러다 보니 아무렇게나 뒤죽박죽 버리거나 먹고 난 밥그릇이 지저분한 사람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선입관을 갖게 된다. 더구나 겉은 그럴듯하게 차려입고, 입은 유창하게 정의를 부르짖는 사람의 식사 끝낸 접시에 음식이 덕지덕지 붙어있으면, 왠지 그 사람의 진짜 속을 들여다 본 것 같아 무안해지기까지 하다.

 

절이나 교회가면 식사 때마다 감사기도 하는 연습들은 참 열심히 한다. 기도보다는 먹고 나서 지저분한 밥그릇을 바라보며 속죄하는 것이 더 먼저인 것 같다. 신기한 건 부모가 그런 집은 아이들도 똑 같다는 사실. 역시 진정한 교육은 어른이 먼저 모범을 보이는거지 가르치는 일은 아닌 모양이다. 자신은 너저분한 빈그릇을 내밀망정 자식에게 그리하라 가르치진 않았을테니까.

 

밥을 자기 양만큼 가져가서 깨끗이 먹는 습관을 들이기에 발우공양보다 좋은 연습은 없다. 대학 1학년 때 설악산 백담사에 수련회를 가서 발우공양을 처음 배웠다. 전두환 전 대통령보다 내가 훨씬 더 먼저 백담사에 기거했다는 사실.ㅋㅋㅋ

 

눈이 유독 많이 내렸던 그 겨울의 백담사는 지금도 소중히 내 기억 속에 저장되어 있다. 우리 일행이 절에 들어가면서 내리기 시작한 눈이 며칠 만에 허리까지 차올라 오도 가도 못하고 몇 주를 그곳에서 보내야 했다. 반찬이라고는 뒤곁에 묻어둔 김장김치가 전부였지만 먹을 때마다 얼마나 달던지, 지금까지 그 것보다 더 맛있는 김치는 먹어본적 없었던 것 같다.

 

당시 우리를 지도하던 20대 초반의 젊은 스님은 한용운 스님이 기거하던 방을 자신이 쓰고 있다는데 큰 자부심을 갖는 분이었다. 달무리 지는 밤이 오면 ‘님의 침묵’ 한 소절을 애절하게 읊조리고는 퉁소를 멋스럽게 불던, 정작 스님의 본업인 수양하는 일에는 별 관심 없어 보이는 땡 중 같았지만, 그 멋에 취해 스님이 되었다고 당당하게 밝히던 참으로 솔직담백한 분이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스님들과 함께 발우공양을 해야 했다. 식사를 하고 나서 자신이 먹고 난 밥그릇과 반찬그릇을 깨끗이 닦아서 그 물까지 마셔버리는 그야말로 최첨단(?) 친환경 식사법이다.

 

공양을 마치면 마지막으로 발우를 닦은 맑은 물을 한 양동이에 모두 쏟아 붓고 스님의 검사를 받았는데, 만일 그 물에 고춧가루가 한 점이라도 떠 있으면 양동이의 물을 모두 돌아가며 마셔야 했다.

 

처음 며칠은 연습이 제대로 되지 않아 날마다 그 구정물을 들이켜야 했는데, 첫날은 도저히 넘어가지 않을 것 같아 입만 갖다 대고 흉내만 내었더니, 금방 들통이 나서 다른 사람보다 몇 배나 더 많이 마시는 벌을 받았다. 그때의 그 기분이란, 구역질을 해대면서도 스님의 죽비가 무서워 벌컥벌컥 삼킬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이, 그것도 처음엔 구역질이 나더니 몇 번 해보니 이골이 나서 그런지 별 생각 없이 시원하게 들이키는 경지에까지 도달하게 되었다. 원효스님은 해골바가지 물도 모를 땐 그리 달게 마셨다는데, ‘일체유심조’를 되뇌며 주문을 거니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사람들은 아마 그래서 도를 닦는가 보다. (진짜 도 닦고 계시는 스님들께는 죄송!^^)

 

우리 아이들에게도 구정물 마시는 연습을 시키지는 못했어도 밥을 먹을 때마다 습관처럼 먹고 난 그릇을 깨끗이 해야 한다며 잔소리를 한다. 정말 많아서 어쩔 수 없이 남겨야 할 때를 제외하면, 밥풀 한 알 그릇에 붙여 두는 것도 우리 집 밥상에서는 허용되지 않는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몇 가지 안되는 장점 중 하나다. 

 

밥 먹고 나서 제 밥그릇 돌아보는 습관을 가지면 어떨까? 바로 그 빈 밥그릇이 자신의 보이지 않는 얼굴이라고 생각한다면 그토록 더럽게 내밀지는 못할 것이다. 그런데 먹고 난 빈 그릇은 정말 우리의 맨얼굴이다. 근사하게 차려입으면 신사 숙녀인 것 같고, 천박한 속내를 감출 수 있으리라 믿겠지만, 이런 작은 실수로 스스로가 시정잡배라는 사실이 쉽게 드러나고 나고 마는 것이다.

Posted by 무터킨더

 

인사동은 대한민국

 

제일의 브랜드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 세계화를 이야기 할 때마다 귀가 따갑도록 들었던 말이지만 실제로는 대한민국 고유의 브랜드를 창출한다면서 새로운 아이템을 찾을 때가 많다. 그런데 과연 그럴 필요가 있을까? 대한민국의 세계화를 위해 ‘우리 것을 잘 지키고 보존하는 것’ 만큼 효율성 있는 작업은 없을 것 같다.

 

얼마 전 서울시국제교육포럼에 참가하기 위해 독일 행복연구소 원장인 슈베르트 선생님과 함께 한국을 방문했다. 공식 일정이 끝나고 나서 주최 측의 배려로 마지막날 서울 관광을 할 기회가 있었다.

 

35년을 살았던 서울, 내게는 눈 감아도 보일 것 같은 익숙한 도시다. 서울관광은 크게 관심도 없었고 따분한 일정이어서 빠지고 싶었지만 함께 간 슈베르트 선생님에게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따라다니게 되었다.

해외 참여자 몇 사람은 일 때문에 먼저 돌아갔고 포럼을 진행했던 선생님과 남은 외국 손님 몇 명이 함께했다. 나는 뜻하지 않게도 독일인 슈베르트 원장과 프랑스인 안드레 메르씨 선생님 사이에서 기쁨조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다 늙어서 기쁨조라니.^^

 

처음엔 내키지 않는 발걸음이었지만 외국인들과의 여행을 통해 내가 알지 못했던 서울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한국인은 하루에 1시간만 잔다?

 

프랑스나 독일인들은 해외여행을 떠날 때 보통 그 나라에 관한 책 서너 권 정도는 읽고 간다. 그때문인지 슈베르트 선생님도 이미 한국에 대해 아는 정보가 많았다.

 

새벽녘까지 꺼지지 않는 상가의 불빛이며 술집, 노래방, 빌딩 숲, 인구의 4분의 1일 모여 사는 서울과 그 위성도시들의 소비문화에 대해 그가 나보다 더 많이 알고 있는 듯, 친절하게 설명까지 해주었다.

 

밤 문화를 이야기 하다가 어떤 책에서 읽었는데 ‘한국인은 하루에 1시간만 잔다.’고 나와 있었다며 ‘너도 몰랐지?’라는 표정을 지으며 의기양양해 했다. 5시에 집에 들어가서 1시간 자고 6시에 일어나 출근을 준비한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는 어찌나 웃기던지, 좀 과장된 면이 없지는 않았지만 제대로 한국 직장인들의 생활패턴을 표현한 것 같아 무릎을 치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책에서 읽은 지식인지, 여기저기 얻어들은 잡식인지, 처음 와 본다는 한국에 대해 많이도 알고 있었다. 그런 그가 한국에 도착해서 호텔에 여장을 풀자마자 내게 가장 먼저 한 질문은 ‘인사동은 어디 있냐?’였다. 프랑스에서 온 메르씨 선생님도 서울 관광을 하는 내내 여러 번 같은 질문을 했다.

 

인사동은 어디쯤 있나요?

 

서울관광의 필수코스인 남산타워, 슈베르트 원장과 메르씨 선생님은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동안에도 무덤덤했고, 매끈하게 잘 정돈된 타워로 연결된 시설들에도 별로 감흥이 없어보였다.

 

남산타워에 올라가 서울을 내려다보던 슈베르트 원장은 인사동이 어디쯤 있는지 다시 물었다. ‘이건 또 뭐지?’, 남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이런 질문을 받을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나는 적잖이 당황하며 불현듯 인사동 위치 찾았다. “아마 저기쯤 되는 것 같은데 빌딩숲에 가려 보이지 않네요.”라고 했더니 그는 너무 안타깝다는 제스처를 취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남산을 내려와 인사동에 도착했을 때 두 사람은 물 만난 고기였다. 표정부터 달라지기 시작하더니 도자기며 아기자기한 공예품이며, 이것저것 한국적인 상품들을 구경할 때마다 감탄을 연발 했다. 마치 한국에서 흥미로운 관광지는 인사동 한곳밖에 없’는 것처럼 반색하는 모습들이 뜻밖이었다.

 

프랑스인 메르씨 선생님은 그렇다 치고, 지금까지 바로 이웃에서 함께 살았던 독일인에게 내가 미처 감지하지 못했던 문화적 향유를 확인하는 순간 묘한 괴리감이 형성되는 것 같았다. 인사동이 이처럼 한국의 문화를 대표할 수 있는 대단한 장소였다니.

 

슈베르트 원장과 메르씨 선생님의 눈빛은 인사동 한옥에서 한복을 입어보고 다도를 체험하는 순간에도 초롱초롱 빛났다. 슈베르트 원장은 책에서 읽었는지, 한복을 입더니 근엄하고 권위적인 제왕의 자태를 드러내며 우스광스러운 표정을 연출해서 나로 하여금 폭소를 자아내게 했다.

 

슈베르트 원장과 메르씨 선생님, 그들에게는 인사동이 가장 한국적인 관광지여서 흥미로웠는지 모르지만 내게는 인사동에 도취된 그들이 신기했다. 대한민국을 상징할 수 있는 대표적인 문화가 인사동이었다니.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란 말은 역시 진리다.^^

 

** 이 글은 국가브랜드위원회에 기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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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무터킨더

 

나 어릴 적 공부했던

 

추억의 교실

 

 

지난번 한국을 방문했을 때 강원일보사가 주최하고 강원도교육청과 강릉시가 후원한 [2012 강원 교육콘텐츠 박람회]에 갔었습니다.

 

10월 17일부터 20일까지  강릉실내종합체육관에서 개최된 박람회장에서 가장 인상 깊게 본 옛 교실의 모습을 재현한 부스입니다.

 

‘아, 정말 이랬었지’

나 어릴 적 공부했던 ‘추억의 교실’

외국에 살아서 그런지 감회가 더 남다르더라고요.

저와 연배가 비슷한 7080세대들 다함께 추억에 젖어 볼까요?

 

참~ 그립다 저 시절이...... 가난했지만 가슴은 난로만큼이나 따끈했는데.....

 

Posted by 무터킨더

 

아무도 칭찬해주지 않았던

 

한 독일인의 한국어 인사

 

 

행복수업 슈베르트 원장님과 함께 [2012서울국제교육포럼] 참가차 한국을 다녀왔다. 외국인과 함께 여행을 하다 보니, 내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여러 가지 한국인의 특성들이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독일인이 보통 그런지 슈베르트 선생이 특별히 남다른 건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한국 갈 때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나를 만나자마자 한국어로 ‘감사합니다. 미안합니다. 안녕하세요.’를 어떻게 말하는지 물어보더니 열심히 외웠다. 아무리 외워도 잘 안 되는지 묻고 또 묻고를 수십 번 반복했다.

 

그 모습을 보니 웃기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한마디 했다. “이제는 한국 사람들이 왜 독일어를 잘 못하는지 충분히 이해하겠지요?”라고 했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한국어가 어렵다며 혀를 내둘렀다.

 

그럼에도 열공을 하더니 비행기에서 내려서 한국 땅을 밟자마다 ‘감사합니다.’라며 내게 한국말을 걸어오는 것이다. 이 말을 시작으로 한국에 있는 동안 내내 자신이 배운 몇 문장을 말할 때는 반드시 한국어로 했다. 요건 또 내가 미처 몰랐던 이분의 독특한 일면이었다.

 

행사요원들을 만날 때는 물론이고 식당이나 호텔로비에서도 기회 있을 때마다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를 계속 주워섬겼다. 외국에 나왔기 때문에 그 나라 사람들에 대한 예의라고도 생각했겠지만 사실은 칭찬이 듣고 싶어서였을지도 모른다.

 

이런 경우 독일인들은 보통 “야! 너 독일어 너무 잘한다. 아주 훌륭해,”라면서 호들갑을 떨면서 빈 말이라도 칭찬을 해준다. 은근히 그런 반응을 기대하고 열심히 ‘감사합니다’를 읊조리고 다녔는데 한국인은 생각보다 성질이 너무 급했고, 눈 파랗고 머리 노란 외국인이 말을 걸어오니 겁을 내는 것도 같았다.

 

가는 곳마다 발음이 잘 안되어 떠듬거리며 ‘감사합니다’란 말을 겨우 하고 나면, 이미 상대는 저만치 가버렸다. 결국엔 뒤통수에 대고 혼자서 멋쩍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를 연발 했다. 마치 코미디 한편을 보는 것 같았다.

 

지치지도 않는지, 외면당하면서도 돌아선 사람 뒤통수에 대고 슈베르트 선생의 ‘감사합니다’는 계속 됐다. 보고만 있자니 웃기기도 하고 미안한 생각도 들어서 나중에는 옆에 있는 한국 선생님에게 언질을 주었다. “이 분이 감사하다고 말하면 칭찬 좀 해주세요. ‘당신 한국어 너무 잘 한다’라고 말입니다”라고.

 

그랬더니 행사를 진행하던 선생님 한분이 웃으면서 “와! 당신 한국어 정말 잘하는 데요?”라고 큰 소리로 칭찬해 주었다. 그 한마디에 어린아이처럼 좋아 하던 모습이 얼마나 웃기던지.... 아마도 이분 그때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에휴~ 겨우 들었네. 한국에선 칭찬받기 왜 이렇게 어려운거야?’

 

한국 사람들은 성질은 급하면서도 참 무뚝뚝하다고 생각했겠지. 그런데 사실 영어로 말 걸어올까 무서워 달아난 사람도 많다는 사실을 이분은 모를 거다. 나도 그럴 테니까. ㅎㅎㅎ

Posted by 무터킨더

 

격식 좋아하는 독일인,

 

비빔밥을 젓가락으로 

 

 

독일인은 식사 예절을 중시한다. 스테이크를 썰 때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고, 외국음식을 먹을 때도 그렇다.

 

외국 음식은 반드시 그 나라 사람들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그 나라 요리사가 만든 요리를, 그 나라 방식으로 먹어야 격식을 차린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거기다가 레스토랑 인테리어까지 구색을 맞추어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아랍인들의 기로스나 도너, 이탈리아에서 온 피자와 아이스크림은 이미 독일인에게는 국민음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몇몇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 임비스라고 하는 기로스 식당은 여전히 아랍인이 운영하고 있고, 유명한 피자 레스토랑은 이탈리아인들이 주인이다.

 

처음엔 참 신기했다. 독일에 들어 온지 하루 이틀도 아니고 수십 년도 더 지난 음식들임에도 여전히 그 나라 사람들의 손에 의해서 만들어져야 제 맛이라고 생각하다니.

 

독일 사람이라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좋아하는 아이스크림도 그렇단다. 대부분 아이스크림 체인점은 이탈리아 사람들이 소유하고 있고 자기네들끼리 사고 판다. 독일이 아닌 이탈리아에서 독일 아이스크림 가계가 거래될 정도라고 한다.

 

아시아 음식도 마찬가지다. 기로스나, 피자, 아이스크림에 비해 들어온 역사가 짧아선지 격식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흉내라도 꼭 낸다. 이 사람들은 외국요리를 입으로만 먹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 고유의 문화를 즐기는 데도 의미를 둔다.

 

독일에서 알게 된 이란에서 이민 온 친구가 아주 잘되는 작은 중국집 하나를 인수했었다. 기본 단골손님이 적지 않아 권리금까지 톡톡히 지불하고 말끔하게 내부 수리를 마치고 장사를 시작했다.

 

시작은 참 좋았는데 딱 3개월 만에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들어오는 손님마다. 놀라서 물었다고 한다. ‘당신은 아시아인도 아니면서 어떻게 중국식당을 하느냐?’고. 그렇게 묻고 가는 사람은 다시 오지 않았다. 그 많던 단골은 석 달 만에 끊어져 버리고, 결국엔 폐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아시아 음식에 대해서는 중국식만 알았지, 일식과 한식에 대해서는 생선초밥이나 김밥 정도일뿐 여전히 잘 모른다. 정확히 아는 상식은 젓가락 문화다. 특히 스시를 젓가락으로 먹을 줄 안다는 것에 은근히 자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일식은 여기서도 중국요리보다 세련된 사람들이 즐긴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독일인이 일식집을 하면 안되고, 베트남이나 중국인이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독일인이나 중국인이나 스시를 모르는건 마찬가지건만. 쯧쯧....

 

여하튼 이렇게 격식을 따지다보니 일본이나 한국 음식은 무조건 젓가락으로 먹어야 식사예절에 맞는다고 생각해선지 한국 레스토랑에 갈 때 마다 꼭 보게 되는 웃기는 장면, 비빔밥을 젓가락으로 먹는 독일인이다.

 

외식 할 때마다 젓가락으로 비빔밥을 우아하게 집어 올리는 옆자리 손님을 힐끗힐끗 보며 웃음을 참았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참 재주도 좋다. 비빔밥을 어떻게 젓가락으로..... 그런데 신기하게도 끝까지 내려 놓지 않고 다 먹는다. 대단한 독일인.....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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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무터킨더

 

내 부모에게 받은 대로

 

내 자식도 키운다

 

 

자식을 키우는 사람은 살면서 여러 번 놀란다. 아파서 놀라고, 사고 쳐서 놀라고, 성적 떨어져서 놀라고, 대들어서 놀라고. 그 중에도 가장 놀라웠던 일은 무서우리만치 나를 그대로 닮아있는 모습을 볼 때였다. 그것도 안 좋은 점만 골라서 아주 그대로.^^

 

내 아이들에게 내가 부모에게 가졌던 불만들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나름 노력한다고 생각했다. 유전자 속에 유유히 내려오는 업식의 찌꺼기가 내대에서 끝나길 간절히 기원하면서 살았던 것 같다.

 

그런데 어느 날 우리 아이들이 내가 사춘기 때 가졌던 불만들을 그대로 토로했을 때 절망했다. 과연 인간에게 카르마란 이리도 무서운 장벽이란 말인가.

 

더 황당했던 것은 나는 나름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보며 뿌듯했었다. ‘너희들은 엄마가 갖지 못했던 것들을 누릴 수 있어 행복할 거야.’라고. 그러나 그것이 나만의 착각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눈앞이 캄캄했다. 우리 아이들도 내가 부모에게 가졌던 불만들을 사소한 것들까지 가지고 있었다. 풀 수 없는 실타래일까? 무서운 유전이다.

 

불교신자에게 카르마란 화두는 영원한 숙제다. 그 카르마에서 벗어나는 수련 과정이 바로 신앙생활이다.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청결히 하고, 기도하는 생활,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수도 없이 던지며 나를 버릴 때, 조금씩 깊은 업식의 경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마음공부가 정말 간절한 사람들은 목숨 걸고 달려들기도 한다. 버리고자 하나 버려지지 않을 때의 고통, 나도 조금은 알고 있다. 그것이 자식을 키우지 않을 때는 절실하게 다가오지는 않았던 것 같다. 버려도 그만, 안 버려도 그만. 생각해보니 오만했다.

 

그러나 이제 분명 나를 버려야 할 것 같다. 자식들이 내 유전자를 물려받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끝없이 나를 버려야 한다. 선택이 아니라 필수요, 부모 된 자로써 절대 절명의 과제여야 할 것 같다.

 

나는 종교를 통해 병을 극복한 사람이다. 뭣한 사람 같았으면 절이든 교회든 돌아다니며 간증한다고 설치고 다녔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분명히 안다. 종교는 내가 나를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었을 뿐 내 병을 낫게 한건 나다.

 

오로지 나를 버리는 작업이 성공했기 때문이었다. 마음이 바뀌면 당연히 몸의 순환도 달라진다는 것을 체험을 통해 알고 있다. 그런데 그런 체험들이 서서히 잊히고 있다. 정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건강을 되찾으니 답에서 멀어지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잊고 지내는 내게 가끔씩 아이들이 자극 주어 감사하다. 내 삶이 흔들리면 아이들이 가장 먼저 달라진다. 우리 아이들은 귀한 나의 거울이다. 내가 하는 그대로 흉내 내는 거울, 항상 깨끗하게 닦아야 얼굴이 잘 보이는 거울.^^

Posted by 무터킨더

 

한국식당 다녀간

 

독일인들의 시식후기

 

 

이번 여름휴가는 ‘우리도 맛집 여행 한 번 해보자’며 작정을 하고 떠났었다.

 

출발하기 전에 큰 아이에게 한식당 리스트를 찾아보라고 했더니 스마트폰을 뒤적이다 말고 갑자기 혼자 킥킥거리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한식당에 다녀간 독일 사람들이 남긴 아래와 같은 시식소감이 너무 재미있다며 읽어주었다.

 

“야, 이집 정말 맛있었다.”

“그래? 넌 매운 것 잘 먹는 모양이지? 난 매운 음식 못 먹으니 먹을 게 별로 없었는데”

 

이때 이 한식당을 가본 적 없는 한 사람이 끼어든 모양이다.

 

“그렇게 매워?”

“빨간색은 토마토소스가 아니라 모두 고추가루니까 건드리지도 마.”

“난 그래서 빨갛지 않은 것만 먹고 왔어.”

“빨갛지 않은 건 뭐가 있는데?”

“밥! ㅋㅋㅋ”

 

외국 나와 살다보면 가장 적응하기 힘든 일이 먹는 습관이다. 특히 독일이나 영국처럼 식습관이 단순하고 음식 맛이 없는 나라에 살다보면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한국음식에 대한 그리움이 사그라지지 않는다..

 

지금은 그래도 예전보다 외국인이 많이 살다보니 식재료며 레스토랑도 다양해진 편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먹을 게 별로 없다. 또 먹을 만하다 싶은 레스토랑은 가격이 너무 비싸 자주 가기가 쉽지 않다.

 

가끔 꿩 대신 닭 잡는 심정으로 중국집을 갈 때마다 참 많이 아쉽다. 분명 중국음식보다는 한식이 맛이며 건강면에서도 우수한 것 같은데 왜 세계화가 이리도 어려운 것인지.

 

10년전 만 해도 주택가에 살면서 중국식 면볶음 맛을 보려면 차를 타고 한참은 나가야 있는 차이나 레스토랑을 찾아가야 했다. 그것도 만만치 않은 가격으로. 그러나 지금은 중국집이 골목마다 한자리씩 차지하고 있어 마음만 먹으면 걸어서도 얼마든지 갈 수 있다.

 

또 그 면볶음은 독일 국민음식 수준이 되어 너나 할 것 없이 좋아하고 가격도 엄청나게 저렴해 졌다. 그런데 나는 돈 주고는 안 사먹는다. 차라리 집에서 짜파게티를 끓여 먹는 편이 더 났기 때문이다.

 

맛을 볼 기회가 별로 없어서 그렇지 한번 한국음식을 경험한 사람들은 잊지 않고 반드시 다시 찾는다고 한다.

 

한식을 세계화하기 위해서 연구해야할 과제는 매운 맛이다. 매운 맛을 순화할 수 있는 방법과 효과적으로 대체할 수 있는 맛을 개발하고 찾아내면 좋을 것 같다. 독인인들 중에도 한국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을 더러 보았는데 반드시 하는 말이 ‘맛은 있는데 너무 맵다’이다. 물론 매운 맛을 즐기는 사람들도 간혹 있지만 대부분의 독일 사람들은 여전히 익숙하지 않은 것 같다.

 

한식의 세계화, 아무리 생각해봐도 도전해 볼만하다. 좀 더 적극적으로 홍보에 나서고 한국음식의 장점이자 단점인 매운맛을 적재적소에 제대로 활용하면 분명 세계적인 음식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 같다.

 

 

Posted by 무터킨더

 

가정교육 없이도

 

자식 잘되는 부모의 비결

 

 

독일에서 친근하게 지내는 작은 한국 식당을 운영하는 지인이 있다. 부부가 참 열심히 산다.

 

아침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하루 종일 일하고 집에 들어가면 두 아이들은 이미 잠들어 있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이날 이때까지 부모가 함께 일을 하다보니 자식을 살뜰히 돌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아이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숙제며 준비물 챙기기 등 모든 일을 자기 스스로 해결 하는데 익숙하다.

 

집에 가만히 놀면서 나름 교육 철저히 시킨다는 사람들도 자식 키우기 힘들다고 난리들인데, 이집 아이들을 보면 혼자 커도 어쩜 그리 서글서글하고 선하게 잘 크는지 만날 때마다 신기했었다.

 

반듯하게 자라는 아이들을  보면 ‘역시 인간은 가르친다고 되는 게 아니야. 타고나길 잘해야지. 천성이야 천성’이라고 여기기도 했고, ‘부모가 열심히 사니 자식은 저절로 잘되는 구나’라고도 생각했었다.

 

이번 여름에 그 부부를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자신들은 아이들에게 이미 유언을 해두었다고 했다. ‘그 나이에 벌써 유언?’ 유언이라는 말에 깜짝 놀랐고 유언의 내용을 듣고 더 놀랐다.

 

내용인 즉, ‘이다음에 엄마 아빠가 죽고 이 세상에 없을 때 보고 싶거든 네 주변에 불쌍하고 가난한 사람이 보이면 도와줘라. 그게 엄마 아빠를 가장 기쁘게 하는 일이야’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이런 유언을 했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부끄러운 생각이 들고 멋쩍어 할 말을 잃었다. 이야기 하는 사람은 별 생각 없이 하는 것 같았는데 듣는 나는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기 쉬운 말이지만 나는 솔직히 그런 유언을 한다는 생각을 지금까지 해본 일이 없으니 말이다. 바로 이들이 자식을 아무렇게나 버려두어도 올곧게 잘 크는 노하우는 여기 있었다.

 

그리고 보니 이 부부가 그 인근 노숙자들을 위해 한 달에 한 번씩 밥을 해주는 봉사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길을 가다가 문득 노숙자 봉사단체가 보여 무작정 기부를 하고 싶다고 했더니, 돈 보다는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이니 음식으로 해주면 더 좋겠다고 해서 8년 전에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독일 사회에서 돈을 벌었으니 아주 작은 일부라도 이 사회에 돌려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런 건지 어쩐 건지, 허름하고 작은 이 식당은 오전부터 밤 늦게까지 장사가 너무 잘돼 바글바글하다. 손님들도 어떻게나 친절한지, 셀프 서비스도 아닌데 적당히 눈치 봐서 주인이 바쁜 것 같으면 알아서 그릇 가져다주고 손수 뒷정리까지 하고 돌아간다.

 

깐깐하고 깍쟁이 같은 독일 사람들이 순한 양이 된 것 같았다. 20년 가까이 같은 장소에서 장사를 하니 거의 대부분이 단골 고객이라서 그런 건지, 정말 신기 했다.

 

이 부부가 사는 모습 그대로가 내게는 신앙이다. ‘주면 얻으리라.’ 자식도 그런 부모를 보고 자라니 어떻게 잘못될 수 있겠는가.

 

자식교육, 키울수록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아주 쉽다. 나만 정직하고 반듯하게 잘 살면 자식은 저절로 잘 큰다는 진리를 왜그렇게 자주 잊고 사는지. 가끔 이런 자극이 필요한 것 같다. 내게 신선한 화두를 던져 준 부부였다.

Posted by 무터킨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