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1학년 독일부모의 공부습관 들이기


큰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가까운 거리에 살면서 우리 아이와 친하게 지냈던 데이비드라는 친구가 있었다. 아빠는 물리학을 공부한 후 컴퓨터 계통의 개인 사업을 했었고 엄마는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건축설계사로 일했던 전형적인 독일 중산층 가정의 아이였다. 우리아이와는 숙제를 함께 하기도 하고 운동도 같이 해서 데이비드의 근황은 큰아이와 나와의 대화에 자주 등장했다.


어느 날 아이가 방과 후 집에 오자마자 숙제검사 이야기를 하면서 데이비드가 숙제를 틀리게 해가서 울기까지 했다고 그날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들려주었다.


아이에게 이야기를 들은 지 한참이 지난 어느 날 우연히 길에서 데이비드 엄마를 만났다. 그 즈음엔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입학하고 얼마지 않은 때여서 이야기의 주제는 대부분 학교생활에 관한 것들이었다. 그날도 이것저것 학교에 대해 말하다가 얼마 전에 들었던 데이비드 숙제이야기가 생각나서 물어보았다. 데이비드는 아빠에게 숙제를 물어봤다고 하던데 왜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았냐고 물었더니 의외로 데이비드 부모의 교육관을 엿볼 수 있는 대답을 듣게 되었다.


데이비드는 그날 학교에서 돌아와서 현관문을 열자마다 ‘아빠는 엉터리, 가짜 박사’라며 잔뜩 화가 나서 아빠에게 속았다며 엄마를 붙들고 투정을 부렸다고 한다. 초등학교 1학년 숙제도 모르는 사람이 무슨 박사냐면서.


그런데 데이비드 엄마의 말을 들어보니 이런 일련의 사건들은 이미 계획되어 있었다. 데이비드 아빠가 숙제가 틀린 줄 알면서도 정확하게 알려주지 않은 이유는 아이에게 자신의 숙제를 스스로 해결하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 습관을 길러주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아이가 물어보았을 때 바로 친절하게 지도하는 방법도 좋은 일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되면 수동적으로 공부하는 학생으로 클 확률이 많다는 것이다.


숙제가 틀려서 선생님에게 지적을 받으면 부모가 가르쳐 주어 정확하게 해가서 잘했다고 칭찬 듣는 것보다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또 자존심이 상하니 틀리지 않기 위해 수업시간에 열심히 듣게 될 것이라는 기대도 하고 있었다.


실제로 아이는 그날은 학교에서 창피해서 죽는 줄 알았다고 화를 내더니 그 다음 부터는 아빠를 못 믿는다며 숙제를 물어볼 일이 있어도 아빠에게 질문한 후 반드시 엄마에게 다시 물어서 대답이 일치하는지 확인한 다음 한다고 했다. 아빠보다 선생님이 정확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인지 아이는 학교에서도 집중을 더 잘하고 있는 것 같았고 툭하면 ‘우리 선생님이 그러는데.....’라며 선생님을 절대적으로 믿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 아이가 숙제를 물어오면 혹여 하나라도 틀릴까봐 함께 고민하고 설명까지 곁들여 완벽하게 가르쳐주어야 직성이 풀리던 한국 엄마인 내게 숙제를 틀리게 내버려둔 데이비드 부모의 교육방법을 듣는 순간 망치로 뒤통수라도 한 대 맞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왜 아이가 숙제를 틀리게 해가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틀리면서 더 많이 배울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모든 공부는 정답을 찾아내야 한다는 생각 속에 젖어있던 나는 틀린 숙제를 통해 아이가 스스로 공부하는 방법에 익숙해질 수 있다는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던 것같다.


이 이야기는 물론 우리 아이 친구 부모의 개인적인 교육관일수도 있어 섣불리 일반화할 수는 없을 것이다. 데이비드 부모와는 달리 정확한 숙제지도를 위해 아이와 함께 머리를 싸매고 ‘요즘 초등학교 문제들은 왜 이렇게 어렵냐!’고 투덜거리며 나처럼 가르치려는 부모들도 당연히 있다. 그러나 내가 본 많은 독일부모들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아이에게 어떻게 많은 지식을 정확하게 전달할까를 고민하기보다는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을 길러주기 위해 노력했다.


또한 특별한 예이기는 하지만 데이비드 부모처럼 틀린 숙제를 고쳐주지 않고 선생님에게 검사받게 하는 사람도 있었다. 더러는 학교 교육은 부모가 아닌 학교가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아이 숙제에 관여하지 않는 부모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아이에게 처음부터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을 길러주기 위해서 하는 일종의 교육행위였다.


당시만 해도 나는 초등학교 1학년밖에 안된 아이에게 완벽한 학교생활을 기대했던 것 같다. 또 언제나 다른 아이들보다 앞서기만을 바랐던 내게 숙제가 틀렸다는 것을 알면서 그냥 학교에 가져가게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바로 앞만 내다보고 달렸던 내 눈에는 보이지 않을 수밖에 없었던 자립심을 키워주는 교육이었던 것 같다. 또 학교와 선생님을 믿고 아이들을 맡기는데 익숙한 사람들이기에 내릴 수 있는 결단이라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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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무터킨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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