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남 스켄들은 한국미술사의

부끄러운 과거가 될 것이다

 

 

내가 조영남 대작논란 스켄들에 관심갖는 이유는 그분의 팬이어서도 그런 스타일의 예술가를 좋아해서도 아니다. 오히려 개인적으로 인간에 대한 호불호를 가리자면 무책임한 자유주의자는 내가 가장 싫어하는 유형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영남 대작논란에 자꾸만 관심이 가는 이유는 지금의 논란이 가까운 미래에는 어떤 평가를 받을까, 혹은 외국의 현대미술가들이 이 사건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볼지에 대해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기 때문이다. 또 15년 전 네덜란드 마스트리트 미술 대학에 잠시 다니는 동안 예술에 대한 한국적 사고로 접근했다가 망신당한 생각이 자꾸 나서이기도 하다.

 

더 중요한 것은 누구도 ‘대작이다 아니다’를 결론내지 못한 사건을 법적 잣대로 재단하겠다는 참...... 이건 도대체 독재도 아니고 뭘까? 그냥 무식의 소치인지...... 이미 페북에 올렸었지만 다시 한번 내 경험을 이야기 하자면.........

벌써 15년이 넘었다. 독일에 살면서 네덜란드 마스트리트 미술대학에서 잠시 공부하다가 건강관계로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겨우 미술의 기초 몇학기를 공부하는 동안 큰 벽을 대하고 있는것처럼 내게 가장 어려웠던 문제는 창작이었다. 유럽의 미술은 기초부터 뎃생이나 색깔 쓰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창작이었다. 창작이 없는 작업은 예술이 아니라 수공업자의 상품일뿐이라고 정의내렸다. 그것은 디자인이든 회화든 마찬가지다.

 

그리고 우리학교 교수들은, 아니 여기 예술가들의 표현방식인지 몰라도 사물을 창작없이 있는 그대로 모방해서 만들어 내거나 그려낸 작품에는 ‘아시아적’이라는 표현을 썼다. 이제 막 미술공부를 시작한 학생들이라도 교수로부터 이런 평가를 듣는다는 것은 대단한 치욕이었다.

창작이라는 작업이 얼마나 어려운지 고전을 하던 내가 한번은 교수에게 따저물었다. 나와 비슷한 아이디어로 숙제를 해온 같은 학과 친구와 내 작품의 평가가 확연히 달랐기 때문이었다. ‘저 학생과 나의 차이는 무었입니까? 교수님이 내준 주제에 대해서 비슷한 아이디어로 작업을 한 것 같은데 나는 왜 점수가 안 나온거죠?’라고 물었더니 교수의 대답은 의외로 작품이 아니라 나의 언어수준이었다.

 

당시 네덜란드에서 공부했지만 네덜란드어는 못했고 영어도 시원치 않았고 독일어도 독일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 유창하지 못했다. 겨우 독일어로 소통은 할 수 있었지만 창작에 대한 모티브와 아이디어를 설명하기에 나의 독일어 실력은 역부족이었다. 마지막으로 교수가 한 말이 조영남의 예술이냐 사기냐의 논란을 보면서 요즘 많이 생각났었다.

 

‘저 학생과 네가 만약 똑 같은 점하나를 찍어왔다고 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또 너는 직접 도화지에 점을 찍었고, 저 학생은 남을 시켜서 찍어왔어도 그 점 속에 어떤 예술적 영감과 아이디어가 있었는지만 설득력 있게 설명할 수 있다면 저 학생의 점은 예술이고 너의 점은 한 갓 낙서에 불과하다.’

 

뭔가 교수의 말이 이해가 될 듯 안될듯 하면서, 또 약간은 억울하기도 했고, 한국에서 고등학교까지 미술이라고 배웠던 지식들에 대해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배신감이 들기도 했지만 그 학교에서 미술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받아들여야만 했던 상식이었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상식수준의 예술에 대한 진실을 무시하고 ‘예술이냐 사기냐’를 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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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무터킨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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