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손님에게만 외상 주는
독일가게 주인
7,80년대 광부로 독일에 온 분들은 거의 독신이었습니다. 결혼을 한 사람들도 한국에 가족을 두고 왔기 때문에 혼자 살아야 했고, 미혼도 대다수였지요.
가뜩이나 물설고 낯설은 이국땅에서 적응하려니 어려움이 이만저만 아니었을 텐데,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가면 도란도란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가족조차 없었으니 많이 외로웠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광부들이 월급이 나오면 절반은 한국으로 송금하고 절반으로 생활했다고 합니다. 그때든 지금이든 아마 광부 월급이면 한 달 근근이 입에 풀칠할 정도였을 겁니다. 7,80년대였으니 당시 독일 돈인 마르크를 원화로 환전 하면 큰돈이 되었겠지만, 그 돈으로 독일에서 생활하려면 빠듯한 임금이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월급의 절반을 한국으로 보냈으니 여기서의 생활이 어땠을지는 안 봐도 본 듯합니다. 봉급을 받아도 보름정도 지나면 쓸 돈이 없었습니다. 친구들끼리 모여 앉아 술이라도 한 잔 하고 싶어도 주머니에 잔돈 한 푼 없을 때가 다반사였다고 합니다.
한국에 남아있던 가족들은 보내주는 돈이 적지 않았을 테니 여유가 생겼겠지만, 정작 독일에서 돈 벌어 꼬박꼬박 송금했던 분들은 참 어렵게 그 시절을 버텨냈지요.
그런데 술 좋아하는 한국 남자들이 주머니에 돈이 없다고 술을 참았을까요? 절대 못 참지요.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외국 땅에서도 묘수가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알고 지내는 교포분들에게 들은 내용입니다.
독일에도 식품등 생활필수품을 골고루 갖추어 놓은 키오스크라는 작은 구멍가게가 있습니다. 슈퍼보다는 약간 비싸기는 해도 주말이나 늦은 저녁까지 문을 여는 곳이 많아 급할 때 간단한 물건을 살 수 있는 곳이지요. 요즘은 대형 슈퍼마켓이 많아지면서 점점 사라지고 있지만 예전엔 동네마다 쉽게 키오스크를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분들이 간절한 술 생각을 참을 수 없어 조금씩 키오스크 주인을 길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외상거래를 시작한 것이지요. 외상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던 독일 가게 주인에게 외상을 가르친 것입니다.
처음엔 ‘며칠 후 월급날 꼭 갚을 테니 술 한 병만 달라’고 사정하니 가게 주인은 '이게 뭔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린가!' 했겠지요. 혹시 떼먹고 달아날까 반신반의 하며 내키지 않았지만 사정하는 통에 어쩔 수 없이 한 두병 내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 번, 두 번 한국 사람들과 거래를 해보니 월급날만 되면 어김없이 갚는 것이었습니다. 또 그 덕에 매상도 더 많이 오르니 키오스크 주인도 슬슬 재미가 들기 시작했겠지요.
한국 손님을 완전히 믿게 된 가게주인은 아예 외상장부까지 만들어 놓고 달라는 대로 얼마든지 내주었답니다. 이런 말 들으면 웃기면서도 왜 이렇게 자랑스럽지요? 계산이라면 정확하게 하는 노랑이 독일 장사꾼이 얼마나 믿었으면 마음 놓고 외상을 주었겠어요. 당시 한국 광부들은 가난했지만 정직하게 살았기 때문에 인정 받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더 웃긴 건, 이 독일 키오스크 주인은 한국 손님과만 거래했지 독일손님에게는 절대 외상 사절이었답니다. 좀 슬프기는 하지만 재밌지요?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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